끊어진 갓끈, 이어진 충성

  • 등록 2026.02.08 07: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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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탑뉴스신문사 송행임 기자 |

 

끊어진 갓끈, 이어진 충성

김부조(시인·칼럼니스트)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은 불같은 성격으로 몰아칠 때는 무섭게 몰아치되, 일이 극에 이르면 스스로 멈출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호색한이자 쾌남아, 열혈남이면서도 도가적 군주라는 상반된 수식어를 함께 지닌 인물로 전해진다. 이러한 장왕의 성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가 바로 ‘절영지회(絶纓之會)’다.

 

장왕은 영윤(令尹) 투월초(鬪越椒)의 반란을 평정하고 돌아와 여러 신하를 점대(漸臺)에 모아 연회를 베풀었다. 점대는 훗날 한(漢)나라 무제가 세운 누대의 이름으로도 전해진다. 이날 연회에는 장왕의 비빈들 또한 참석했다. 왕과 신하들은 푸짐한 음식과 흥겨운 풍류 속에서 하루를 즐겼고, 저녁이 깊어져서도 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에 장왕은 불을 더 밝히고, 사랑하던 빈첩 허희(許姬)에게 명해 여러 대부에게 술을 돌리게 했다. 술잔을 받은 신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술을 받아 마시며 연회의 흥을 더했다.

 

그때 갑자기 광풍이 불어와 촛불이 모두 꺼지고 말았다. 미처 다시 불을 켜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어떤 사람이 허희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놀란 허희는 왼손으로 소매를 움켜쥐고 몸을 빼는 동시에, 오른손으로 그 사람의 관끈을 잡아당겨 끊어버렸다. 관끈이 끊어지자 상대는 크게 당황하여 허희의 손을 놓았다.

허희는 끊어진 관끈을 들고 곧장 장왕 앞으로 나아가 조용히 아뢰었다.

 

“첩이 대왕의 명을 받들어 백관에게 술을 돌리던 중,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촛불이 꺼진 틈을 타 무례하게도 제 손을 끌어당겼습니다. 제가 그자의 관끈을 잡아당겨 끊어 왔으니, 속히 불을 밝혀 무엄한 자를 찾아내시옵소서.”

불만 켜면 범인은 즉시 드러날 상황이었다. 그러나 장왕은 잠시 생각하더니 뜻밖의 명을 내렸다.

 

“오늘 이 연회는 경들과 더불어 마음껏 즐기기로 한 자리다. 모든 경들은 관끈을 끊고 실컷 마시도록 하라. 관끈이 끊어지지 않은 자는 아직 흥을 다하지 못한 자다.”

 

이에 백관들이 모두 관끈을 끊은 뒤에야 장왕은 촛불을 밝히라고 명했다. 그 결과, 허희를 희롱한 사람은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 초나라는 진(秦)나라와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전투 도중 진군의 공세에 밀려 장왕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한 장수가 목숨을 내던지듯 싸우며 분전해 왕을 구했고, 결국 대승을 이끌어냈다. 그 장수의 이름은 장웅(蔣雄)이었다.

 

장왕은 그가 의아하여 불러 물었다.

“내가 평소 그대를 특별히 우대한 적도 없거늘, 어찌 그토록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는가?”

 

그러자 장웅은 엎드려 이렇게 아뢰었다.

“신은 이미 3년 전에 죽었어야 할 몸이었습니다. 연회가 있던 날 밤, 술에 취해 무례를 저질렀으나 폐하께서는 그 일을 덮어 주시고 제게 아무런 벌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신은 늘 간과 뇌를 땅에 쏟고, 목의 피를 흘려서라도 그 은혜를 갚고자 다짐해 왔습니다. 신이 바로 그날 갓끈이 끊어졌던 바로 그 자입니다. 폐하의 온정으로 살아남았으니, 오늘 한 목숨을 바쳐 보답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이 전쟁에서 진나라를 물리친 이후, 초나라는 점차 강대해졌고 장왕은 마침내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 고사를 통해 우리는, 원수를 갚는 일은 적을 이기는 데 그치지만, 용서는 위대한 인재를 얻는 일이라는 깊은 교훈을 깨닫게 된다.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자의 그릇이란, 초장왕과 같아야 하지 않겠는가. 넓은 도량이 있어야만 아랫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에서, ‘절영시(絶纓詩)’는 지금도 큰 울림을 전한다.

 

"어둠 속에서 잡아끈 손은 취중의 행동이었고/ 고운 손은 바람처럼 관끈을 끊었네/ 물이 지나치게 맑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듯/ 군왕의 넓은 도량을 바다에 비유하네(暗中牽袂醉中情/ 玉手如風已絶纓/ 畜魚水忌十分淸/ 盡說君王江海量)"

송행임 기자 chabo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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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행임 기자

불탑뉴스에서 사회부, 종교부,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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